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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이야기

인류의 달 탐험 여정

하늘항아리1 2025. 3. 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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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고대부터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관찰해 왔지만, 물리적인 달 탐사는 불과 65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달 탐사의 역사는 기술적 도전과 국가 간 경쟁, 그리고 인간의 끊임없는 호기심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여정입니다.

 지금부터 인류의 달 탐사 역사를 초기 관측부터 현재의 야심 찬 계획까지 시간순으로 살펴보고, 특히 중요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어 자세히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biz조선 기사 갈무리

초기 달 관측과 탐사의 시작

 인류의 달에 대한 호기심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과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609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최초로 망원경을 이용해 달을 관측하면서 과학적 관찰이 시작되었으나 실제 물리적인 달 탐사는 냉전 시대의 우주 경쟁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첫 물리적 달 탐사는 1959년 소련의 루나 2호가 달 표면에 충돌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인류가 만든 첫 번째 물체가 지구 외의 천체에 도달한 역사적인 순간이며, 같은 해 10월 7일, 루나 3호는 달의 뒷면을 최초로 촬영하여 지구로 사진을 전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사진들은 인류에게 처음으로 달의 숨겨진 면을 보여주었습니다.

 

 1966년 2월 3일, 소련의 루나 9호는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해 사진을 전송하였습니다.

 이후 미국은 서베이어 계획과 루나 오비터 계획을 통해 무인 착륙선과 궤도선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루나9호 달 표면 사진 / Now News 기사 갈무

아폴로 시대와 인류의 달 착륙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뒤처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1961년 유인 달 착륙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 나라가 1960년대가 지나가기 전에 달에 인간을 착륙시킨 뒤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해야 함을 믿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1968년 12월 24일, 아폴로 8호는 세계 최초로 유인 달 궤도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인류가 지구 중력을 벗어나 다른 천체의 중력장에 진입한 첫 사례였습니다.

 

아폴로 11호: 인류의 달 첫 발자국

 1969년 7월 16일, 역사적인 아폴로 11호가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발사되었습니다.

 선장 닐 암스트롱,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달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탑승했습니다.

 지구에서 발사된 지 나흘 뒤인 7월 20일, 달 착륙선 '이글'이 달의 '고요의 바다'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습니다.

 

 암스트롱은 1969년 7월 21일 02시 56분 15초(UTC)에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으며 역사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이후 올드린은 20분 후에 달 표면에 내려왔습니다.

 두 우주인은 달에서 약 2시간 30분 동안 걸어 다니며 21.5kg의 달 표본을 채집했고, 이 사이 콜린스는 달 궤도를 돌고 있는 사령선에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아폴로 11호의 성공으로 케네디 대통령이 선언한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 목표가 달성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냉전 시대 미국의 과학적, 정치적 승리를 상징했습니다.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아폴로 13호: 가장 성공적인 실패

 1970년 4월 11일, 아폴로 13호가 세 번째 달 착륙 임무를 위해 발사되었습니다.

 선장 짐 러벨, 사령선 조종사 잭 스위거트, 달 착륙선 조종사 프레드 헤이즈가 탑승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미 중부시각 기준 13시 13분에 발사되어 일부에서는 '13의 저주'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지구에서 약 32만 1,860km 떨어진 지점에서 유명한 "휴스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라는 교신과 함께 산소 탱크 2호가 폭발했습니다.

 이로 인해 서비스 모듈의 전력 및 산소 공급 시스템에 치명적인 손상이 발생했으며, 1번 탱크와 주변 배관, 하이게인 안테나까지 손상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 아폴로 13호의 위치는 달까지 약 6만 km 정도 남아있었습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아폴로 13호의 임무는 달 착륙에서 승무원의 안전한 귀환으로 급격히 전환되었습니다.

 텍사스 휴스턴의 미션 컨트롤 센터는 우주선이 그 자리에서 U턴하기에는 속도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달의 중력을 이용해 자유귀환 궤도를 이용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 속에서 세 명의 우주비행사는 달 탐사선으로 피난했습니다.

 계획상 달 탐사선은 2명만 탑승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3명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승무원들은 양말과 테이프 등을 사용한 응급 필터를 제작하여 이산화탄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또한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의 생명유지장치와 필수 장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비를 꺼야 했습니다.

 결국 1970년 4월 17일, 발사 후 약 6일 만에 태평양에 안전하게 착수하며 모든 우주비행사가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사고 이후 조사 결과, 폭발의 원인은 산소 탱크 히터의 설계 결함이었습니다.

 28 볼트로 설계된 히터 부품에 아폴로 우주선의 통용 전압인 65 볼트가 넘게 걸려 과열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고는 "성공적인 실패"로 불리며,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창의력과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아폴로 13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존 스와이거트, 짐 로블, 프레드 헤이즈 / 머니투데이 갈무리

 

이후 아폴로 임무들

 아폴로 계획은 1972년 12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아폴로 14호는 13호가 가지 못했던 프라 마우로 고지에 착륙했으며, 아폴로 15호부터 17호까지는 더 긴 체류 시간과 향상된 장비를 바탕으로 더 많은 과학적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아폴로 17호의 유진 서넌과 해리슨 슈미트가 1972년 12월에 달 표면을 떠난 이후로 약 50년 동안 아무도 달에 발을 딛지 않았습니다.

소련의 달 탐사

 소련은 유인 달 탐사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꾸준히 무인 달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와 거의 동시에 달 착륙을 시도한 루나 15호는 표면에 충돌하여 실패했습니다.

 

 1970년 9월 24일, 루나 16호는 최초로 무인으로 달 토양을 채집하여 지구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17일에는 최초의 달 로버인 루노호트 1호가 루나 17호와 함께 착륙했습니다.

 1973년 1월 15일, 루나 21호와 함께 착륙한 루노호트 2호는 달 표면을 총 37km 이동하여 당시 지구 외부 천체 표면을 가장 멀리 이동한 로버가 되었습니다.

 

 소련의 마지막 달 탐사선인 루나 24호는 1976년에 발사되었으며, 이후 약 14년간 달 탐사는 중단되었습니다.

 

위키피아 글 갈무리

21세기의 달 탐사 부흥

 1990년 일본의 히텐(Hiten) 탐사선 발사를 시작으로 달 탐사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일본, 인도, 유럽연합 등 새로운 우주 강국들이 달 탐사에 참여했습니다.

 

 중국은 2003년 '창어 계획'을 발표하고 2007년 10월 창어 1호를 발사했으며, 2013년 12월에는 창어 3호가 아시아 최초의 달 착륙에 성공했습니다.

 2019년 1월 3일, 창어 4호는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달에서 식물 재배 실험을 하고, 월석을 지구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인도는 2008년 찬드라얀 1호를 시작으로 달 탐사에 참여했으며, 2019년에는 찬드라얀 2호가 발사되었고, 2023년에는 달 착륙선 '비크람'과 탐사로봇 '프라그얀'을 통해 달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의 달 탐사: 다누리

 2022년 8월 5일, 한국은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를 발사하며 우주탐사 시대를 열었습니다.

 한국이 우주탐사를 처음 선언한 것은 2007년으로, 실제 발사까지 15년이 걸렸습니다.

 

 다누리 개발에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약 2,36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습니다.

 다누리(KPLO: Korea Pathfinder Lunar Orbiter)는 이름 그대로 한국 우주탐사의 '길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탐사선의 설계, 조립, 시험, 발사부터 항행, 교신, 임무 운영과 달 궤도 진입, 임무 수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한국의 첫 경험이었습니다.

 

 다누리 개발에는 국내 기업과 대학교, 정부 출연 연구소 등 59개 기관이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은 우주개발에 필요한 요소 기술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다누리 발사 모습 / 스페이스X 펠컨9 / biz조선 기사 갈무리

 

아르테미스 계획과 새로운 달 경쟁

 현재 미국은 '아르테미스 계획'을 통해 달 탐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습니다.

 이 계획은 2024년까지 국제 협력과 민간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달에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를 보내고, 최종적으로는 달에 지속 가능한 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022년 아르테미스 계획은 무인 우주선을 발사하고, 2025년에 달에 인류를 착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2년에는 달 궤도 우주 정거장인 '루나 게이트웨이'의 첫 번째 모듈을 발사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인 달 착륙을 안전문제, 기술적 완성도 부족 등으로 2026년으로 연기하였고 연기를 발표하면서, NASA는 모든 계획에 우주비행사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하였으며, 앞으로 있을 기술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창어 계획을 계속 진행 중이며, 일본은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와 도요타 자동차가 협력하여 2029년에 무인 탐사선을, 2030년에서 2034년 사이에 유인 탐사선을 착륙시킬 예정입니다.

 

 유럽 우주국은 2024년까지 달에 유인 착륙선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2031년으로 연기, 러시아도 완전 로봇식 달 기지 건설을 목표로 한 루나 글로브 계획을 통해 달 탐사를 계획했습니다.

 

NASA 아르테미스 소개 홈페이지 갈무리

 

달 탐사의 미래 목표와 의미

 21세기의 달 탐사는 단순한 탐험을 넘어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달에는 헬륨-3, 우라늄, 희토류 같은 다양한 희귀 자원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자원을 활용하면 달을 더 먼 우주로 진출하는 전초 기지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달의 일부 지역은 거의 항상 햇빛에 노출되어 태양광 발전에 유리하며, 달의 약한 중력은 우주 탐사를 위한 발사 기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달 표면에 물(얼음 형태)이 존재할 가능성은 인간 정착촌 건설의 핵심 요소로 여겨집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40년 세계 우주경제의 규모는 2020년 4,470억 달러보다 20배 늘어난 1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것처럼 이러한 경제적 잠재력은 각국의 달 탐사 경쟁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32년까지 달 착륙선을 차세대 발사체를 통해서 자력으로 탐사할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 유인 달탐사를 위한 전략과 로드맵을 짜고 있다고 합니다.

 

달 탐사의 의미와 전망

 인류의 달 탐사 역사는 기술적 도전과 국가 간 경쟁, 인간의 탐험 정신이 함께 어우러진 흥미로운 여정이었습니다.

 소련의 루나 2호로 시작된 물리적 달 탐사는 아폴로 11호의 인류 첫 달 착륙이라는 역사적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아폴로 13호의 '성공적인 실패'는 인간의 문제 해결 능력과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주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는 중국, 인도, 한국 등 새로운 우주 강국들의 참여로 달 탐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아르테미스 계획과 각국의 달 탐사 프로그램은 단순한 탐험을 넘어 달 기지 건설, 자원 활용, 더 먼 우주 탐사를 위한 발판 마련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달 탐사는 과학 기술의 발전, 국가 위상 강화, 경제적 이익 창출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며, 앞으로도 인류의 우주 개발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우주 탐사는 '지금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과학자들의 말처럼, 인류는 계속해서 달과 그 너머를 향한 도전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달 탐사의 역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우리는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달을 넘어 화성으로, 아폴로의 쌍둥이 누나 아르테미스

우주 탐사는 인류의 기술적, 과학적 도전을 상징하며, 미래를 향한 희망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요한 분야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르테미스 계획(Artemis Program)'은 단순히 달로 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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