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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반도 읽지 않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한참 동안 저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주 밝은 성격을 하고 아이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행동도 남이 보기에 창피하지만 웃긴 그런 말과 행동도 잘하는 그런 아이, 지금은 엉망이 되었지만 초등학교 때는 다른 학교 음악 선생님이 제가 부르는 노래를 듣기 위해 제가 다니는 학교도 방문하시기도 할 정도로 노래는 잘했던 기억이 있는 아이, 그래서 그런지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빼는 것 없었던 뭔가 참 이상한 아이였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저는 국민학교라고 했었죠? 그런 학교를 다녔습니다.
서울 강남 양재동에 자리한 언주국민학교, 나중에 일이 있어 저의 초본을 보고 알게 된 거지만 강남구가 경기도였다는, 그러니까 시골이었고 지금의 강남역에서 양재역 그리고 AT 센터로 이어지는 그 길은 신작로라고 불렀던 그 시절로 가보겠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 시절 쓰래기 하치장이 있었던 양재동에서 출발하여 흑석동을 오가는 노선번호 288번 버스 기사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노선 버스 288을 똥88로 부르셨죠.
이유는 여러가지 였지만,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어서 아버지에게는 말 못 하시고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버스에 푸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이전에 가끔 하셨던 말씀 중에 아버지께서 운전 하시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렸는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시고는 태우지 않고 그냥 가셨다고, 아버지에게 외 그러셨나고 물으니 너무 지저분하게 옷을 입어 거지인 줄 아셨다고 ㅠㅠ, 다르게 표현하면 그렇게 대부분의 여자들이 하는 간단한 치장조차 하지 않고 아끼셨던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울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는 어머니가 싫으 신가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버지가 지갑에 넣고 다니셨던 어머니의 오래된 흑백 명함 사진의 뒤에 적힌 글을 보고는 참 한국 남자 나쁘다 생각이 되었고, 그런 아버지를 닮아가는 제가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나의 사랑 영원히'
이런 사람이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무심하셨고 그렇게 생을 마감하셨는지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부부 싸움을 많이 하셨을까요..?
매일 드시는 술때문에 그랬을까요? 아니면 밖에서만 좋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말처럼 지인들만 신경 쓰시는 그런 점 때문에 그랬을 까요?
어릴때 기억은 좀 화목했으면 좋겠다는 바라지도 않았고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생각이 많은 아이
저는 어머니에게 참 많이 혼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왜 혼나는지 왜 어머니에게 매를 맞는지 이유를 모르고 맞았던 적도 정말 많은 것으로 기억됩니다.
자다가 맞고, 그냥 다가와 때리시고..
나중에 어머니와 둘이서 간단히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했었는데 어머니께서 '그러게 왜 그렇게 너를 때렸는지 모르겠구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51이 된 저는 알겠습니다.
한 여자가 아주 어릴 적 집을 나와 전혀 다른 모르는 지역에서 한 남자 만을 믿고 자기 인생을 다 바쳤던 삶이 얼마난 고되고 힘들었을지, 어디다 말하고 화를 다스릴 수단이 지금보다도 너무 없었던 그 시절에 내 아이 기는 해도 내 말이면 꼼짝을 못 하는 대상이 옆에 있다면,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하는 실수를 제 어머니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충분히 그랬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왜 내가...!!'라는 상황이 많이 생기다 보니 정말 어떤 시간을 보냈었을지 지금의 내가 그 아이에게 '너 잘못 아니다 그러니 울지 마라...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적는 와중에도 눈물이 자연스럽게 내리는 것 봐서는 분명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평생 친구가 된 대학 동기 녀석
대학에 들어가 저는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절 사진은 아니지만 머리를 박고 기타 연주를 하던 사진이 있어 공유합니다.
뭐 대학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도 순탄치 않았던 사연이 있지만 그 이야기는 넘어가고 거기서 만난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는 유난히 저를 잘 챙겨줬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사회에 나와 나이를 더 먹으면 먹을수록 이상하게 저를 잘 챙겨 줬습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잠시 동안 별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야누스', 두 얼굴을 가진 그리스 신화의 신입니다.
제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 친구가 이야기해줬습니다.
'너 가끔 보면 너무 우울해 보여 ~~~'
그렇습니다.
51이 된 지금도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저는 이 두 얼굴의 변화가 가끔 나옵니다.
제가 이런 글을 공유한 적이 있는데, '저는 말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있으면 어색해서 그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입니다.
정말 저를 딱 설명해 주는 말 같습니다.
그러니 회사 사람들과 있으면 더 힘든 시간이 되는 겁니다.
특히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같이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또한 회사 생활인데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하면 그런 저에게 보상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당장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더 저는 평소에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영화보기, 밥 먹기, 걷기 등등...!
그런 사람과 사는 가족들은 저로 인해서 당연히 답답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뭐랄까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르게 산다는 것은
내 저는 분명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보다는 다르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외롭습니다.
외롭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에 나온 선생님의 말씀으로 알았습니다.
내가 정말 외로운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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